기독교종합편성tv신문 류승우 기자 | 튀르키예 앙카라의 유서 깊은 역사 속으로, 기원전 켈트족의 정착에서부터 사도 바울의 발자취까지, 로마와 비잔티움 제국을 거쳐 오늘날 튀르키예 공화국의 수도로 자리 잡은 앙카라의 숨결이 살아 숨 쉰다.
켈트족의 정착지에서 로마 속주로, 갈라디아의 시작
‘우윳빛’이라는 의미를 지닌 갈라디아는 기원전 4세기 켈트족의 이주와 함께 오늘날 튀르키예 중북부에 뿌리를 내렸다. 기원전 280년부터 시작된 갈라디아 왕국은 이후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앙크라(오늘날 앙카라)를 중심으로 번영했다.
로마에서 비잔티움으로,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앙카라
갈라디아의 중심 앙카라는 로마 제국과 비잔티움 제국의 통치를 받으며 번성했다. 오늘날에도 시내 곳곳에서 로마 시대의 성벽과 비잔티움 유적을 만날 수 있다. 앙카라 언덕 위의 성벽과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의 기념탑이 그 유산이다.
아타튀르크와 터키 공화국, 새로운 수도로서의 앙카라
제1차 세계대전 후 오스만 제국이 몰락하고,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아타튀르크는 수도를 콘스탄티노플에서 앙카라로 이전했다. 역사적 변화를 거친 앙카라는 오늘날에도 유적 발굴이 계속되고 있다.
언덕 위 빈민촌과 행상들의 일상, 현대와 과거의 교차
앙카라의 성벽 안쪽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이른 아침 양말을 팔러 나서는 행상들의 모습은 과거 서울의 물지게를 연상케 하며, 빈민촌의 생활상을 드러낸다.
사도 바울의 발자취와 갈라디아서, 앙카라를 지나며
사도행전 18장 23절의 기록에 따르면 바울은 갈라디아의 중심지 앙카라를 방문했을 가능성이 크다. 많은 성경학자들이 갈라디아서의 집필 시기를 서기 49년으로 추정하며, 당시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던 길에 이곳을 들렀을 것으로 본다.
터키 중북부의 갈라디아는 그 이름이 상징하듯 ‘우윳빛’의 역사적 정체성을 간직한 지역이다. 기원전 4세기, 켈트족의 일부가 동쪽으로 이주해 오늘날의 튀르키예에 정착하면서 갈릭 부족을 형성, 기원전 280년경 갈라디아 왕국을 세웠다.
중심지 앙크라는 로마 제국에 점령된 이후 기원전 25년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며 ‘앙카라’로 이름을 바꾸었다. 로마와 비잔티움 시대를 거치며 수많은 유적이 남아있는 이 도시는 현대 터키의 수도가 되면서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1923년, 아타튀르크는 수도를 앙카라로 이전하며 새로운 공화국의 중심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곳에는 과거의 흔적뿐 아니라 현대 빈민촌의 일상도 공존한다. 성벽 안쪽에 자리 잡은 빈민촌에서 만난 행상들의 모습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한 단면이다.
사도 바울 역시 이곳을 지나갔을 가능성이 크다. 기독교 초기의 중심지였던 갈라디아는 바울의 전도여행과 갈라디아서 집필에 영향을 미친 곳으로, 성경학자들은 그의 발자취를 앙카라에서도 찾고 있다.
오늘날 앙카라의 도심은 로마 시대의 기념탑과 비잔티움 묘지 등 수많은 역사적 유물로 가득하다. 성벽 언덕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보면, 그 옛날 바울이 지나갔을 법한 길이 고스란히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