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VNtv 기획특집4, 신앙의 발자취를 찾아서...] 중세의 문을 닫고 르네상스의 문을 연 인물,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CTVNtv 기획특집4, 신앙의 발자취를 찾아서...] 중세의 문을 닫고 르네상스의 문을 연 인물,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고대 문헌의 부활과 인문주의의 탄생
영원한 사랑, 로르를 향한 문학적 열망
로마의 영광과 계관 시인의 명예

 

기독교종합편성tv신문 김효미 기자 | 중세와 근대를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로 평가받는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는 고대 로마 문학과 인문주의 사상을 부활시키며 르네상스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의 문학적 유산은 당시 인문주의 태동의 계기가 되었으며,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옮겨가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페트라르카는 로마의 고대 영광을 기리며 새로운 문화적 흐름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르네상스의 문을 연 페트라르카 _ 고대 라틴어 문헌 발굴과 인문주의 태동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1304~1374)는 고대 로마의 라틴어 문서를 발굴하고 번역함으로써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의 학문은 신 중심의 스콜라 신학에 지배되고 있었으나, 페트라르카는 고대 문헌을 통해 인간 중심 사상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의 라틴어 연구는 새로운 학문적 욕구를 불러일으켰으며, 이를 통해 인문주의의 태동이 이루어졌다. 특히 키케로와 베르길리우스의 고전을 탐구하며, 인간 본연의 가치를 되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페트라르카의 사랑, 로르_단테의 베아트리체에 비견되는 연모의 대상, 로르
페트라르카는 아비뇽에서 교황청에 일하면서, 한 교회에서 만난 로르(Laure)라는 여인과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인해 평생을 사랑의 열병 속에 보냈다. 비록 그녀는 유부녀였고 그와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로르는 그의 마음속에서 영원한 구원의 여인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이상화한 것처럼, 페트라르카도 로르를 자신의 문학적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는 그녀를 추억하며 수많은 서정시를 썼고, 그중 대표작 칸초니에레는 유럽 시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페트라르카는 그녀의 죽음 이후에도 그녀를 동정녀 마리아처럼 이상화했으며, 그녀를 향한 사랑이 그가 문학가로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과거 로마의 영광을 기리며_위대한 로마 장군 스키피오에 대한 찬양, 서사시 ‘아프리카’
페트라르카는 로마를 방문하면서 과거의 찬란했던 로마 제국의 영광을 떠올렸다. 당시 이탈리아는 여러 도시국가로 분열되어 있었고, 로마의 위대함은 이미 쇠락한 상태였다. 그는 로마를 구한 위대한 장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를 떠올리며 그를 찬양하는 서사시 아프리카를 지었다. 이 작품을 통해 로마는 일시적으로나마 잃었던 자존심을 회복했고, 로마시의회는 페트라르카에게 계관 시인의 명예를 수여했다. 이는 페트라르카가 고대 로마 문화를 부활시키고자 한 열망의 결과물이었다.

 

 

중세와 근대 사이의 인물_라틴어의 고집과 인간 중심 사상의 출현
페트라르카는 고대 로마의 라틴어를 신성한 언어로 여기며 고집했다. 그는 단테가 신곡을 이탈리아 방언으로 기록한 것과 달리, 라틴어 문학에 천착했다. 당시 프랑스어, 히스파니아어, 이탈리아어로 분화된 언어들 속에서 페트라르카는 오직 고전 라틴어만이 인간 본연의 가치를 복원할 수 있는 열쇠라고 믿었다. 그의 문학은 단순한 언어적 고집을 넘어 인류가 고전으로 돌아가야만 인간의 인간다움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스토아 철학을 존중하는 그의 사상에서 기인한 것이며, 인간의 자유의지로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철학적 주장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중세를 닫고 근대를 연 자_페트라르카, 중세의 종말을 고하고 근대를 연 인물로 평가받다
페트라르카는 중세 시대를 끝내고 근대를 연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어거스틴 이후 모든 것이 신에 의지하던 유럽 사상에서 벗어나 인간의 자유의지와 이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어거스틴이 신플라톤주의를 통해 신 중심의 사상을 정립했던 것과 달리, 페트라르카는 고대 로마의 인문학, 특히 키케로의 사상에 심취했다. 그는 인간 스스로가 고전에서 배우고 이를 통해 행복과 지혜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이 사상은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 운동의 토대가 되었다.

 

페트라르카는 그의 문학적 유산과 사상으로 후대 예술가들과 철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서정시와 인문학적 연구는 근대 유럽 문화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특히 그가 남긴 소네트 형식의 시는 세익스피어를 비롯한 많은 후대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페트라르카는 단순히 르네상스의 아버지로 불릴 뿐만 아니라, 중세의 문을 닫고 근대의 문을 연 사상가이자 문학가로서 유럽 문학사와 사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가 주장한 인간의 자유의지와 고전적 가치의 회복은 이후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 정신을 이끄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